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라 다카시 (문단 편집) ==== 다이쇼 정변, 야마모토 내각 ==== 사이온지 내각의 붕괴 후 1912년 12월, 제3차 가쓰라 내각이 출범한다. 그러나 가쓰라의 본의와는 달리 가쓰라를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수하로 보았던 여론의 큰 반발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가쓰라는 자신을 지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신당 설립을 위한 준비와 동시에 정우회와의 연을 끊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신당인 동지회(同志会)에는 100명이 채 안 되는 인원만이 모였고, 정우회를 비롯한 호헌운동[* [[다이쇼]] 시대에 발생한 입헌정치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다. 오랜 번벌 정치에 반발하던 당시 혁신계열 정치인들이 내건 '번족타파, 헌정옹호(藩族打破、憲政擁護)'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된다.]에 대항하기 위해 가쓰라는 다이쇼 천황에게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1913년 2월, [[다이쇼 천황]]은 사이온지에 대해 사태의 수습을 요구하는 [[칙서]]를 발표한다. 사이온지는 천황의 뜻을 어길 수는 없었지만, 당원에 대해서는 행동의 자유를 인정한다. 하라와 마쓰다 역시 천황의 뜻에 따르겠다는 방침을 내걸지만, [[오자키 유키오]]를 중심으로 한 가쓰라 내각 붕괴를 위한 뜻은 굽히지 않았다. 2월 11일, 내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웠던 가쓰라는 내각총사퇴를 결단했으나, 마침 그 무렵 사이온지가 조칙을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근신중에 있었기에, 하라를 비롯한 정우회 내각의 출범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이온지와 사쓰마 번벌은 같은 사쓰마 번 출신의 거물이었던 [[야마모토 곤노효에]] 당시 해군대신을 총리에 임명할 것을 제안하였고, 야마가타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야마모토는 본인의 수상 취임과 동시에 하라와 마쓰다를 내각 각료에 임명하여 정우회의 지지를 받으려고 했으나, 하라는 수상과 외무상, 해군대신 이외의 각료를 정우회에 입당시켜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이에 따라, [[다카하시 고레키요]], 오쿠다 요시토, 야마모토 다쓰오와 같은 각료들이 정우회에 일제히 입당하였고, 당원들로부터는 하라가 내무대신, 마쓰다가 사법대신으로써 내각에 입성하는 제1차 야마모토 내각이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사쓰마 번과의 타협이라고 간주한 오자키 일당은 즉시 정우회를 탈당, 하라에 대한 비판도 커져갔다. 실제로 이 때 하라의 자택 앞에는 100명 가까운 군중이 모였으며, 그 중 정우회 소속 활동가들과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권의 정당성과 유지의 위협을 느낀 야마모토 내각은 이러한 번족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정책을 실행하여 여론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6월에는 해군대신 현역무관제[* 군부대신(육군대신과 해군대신)의 취임자격을 현역 대장 및 중장에 한정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문관은 물론 예비역, 후비역, 퇴역군인들에게도 취임자격이 없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1913년부터 1936년 사이에는 예비역과 후비역 장관급 인사에게도 취임자격이 부여되었다. 이를 군부대신무관제라고 한다.]를 개정하여, 예비역도 군부대신에 임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8월 1일에는 문관임용령을 개정하여, 대졸자 이상의 경우 문관고등시험 면제, 차관자격제한 면제를 선언했다. 하라는 당시 차관 외에도 국장과 현(縣) 등의 지사의 자격제한 역시 면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추밀원의 반대로 차관만으로 한정키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실 추밀원의 이토 미요지[* 伊東巳代治(1857-1934),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의 귀족. 작위는 종1위 훈1등 백작이었으며, 관료이자 정치인이었다.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성 이토(伊藤)와는 다른 성이다.]는 이마저도 철회시키려 했었고, 하라는 이 사실을 몰래 신문에 누설하여 그를 비판했다. 또한 야마모토가 강력하게 여기에 힘을 실어 강력하게 밀어붙였기에 성사된 것이었다. 야마모토의 정치력 권력에 의해 오랜 과제였던 행정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하라와 야마모토 내각은 마침내 여론의 지지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또한 관료계에서도 정우회를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현직 고급관료들이 대거 정우회에 입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정우회는 관료계에도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